[코린이 人물사전] 데이비드 차움, 시대를 앞서간 암호학의 아버지
[코린이 人물사전] 데이비드 차움, 시대를 앞서간 암호학의 아버지
  • 노윤주 기자
  • 승인 2019.02.19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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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최초의 가상통화(암호화폐)를 꼽으라고 한다면 '비트코인'을 먼저 말할 것이다. 그러나 비트코인이 나오기 무려 약 20년 전에 최초의 상업용 가상통화를 발명한 사람이 있다. 바로 데이비드 차움(David Chaum)이다.

차움은 시대를 앞서간 개발자다. 컴퓨터란 단어가 생소했고 인터넷이란 단어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때부터 그는 '프라이버시(개인 정보)'에 대한 걱정을 했다.

그는 정부가 모든 사람의 정보를 수집해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것을 우려했다. 이에 1981년 '추적이 불가능한 이메일, 수신 주소, 디지털 가명'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오늘날 '익명 통신'의 초석이 됐다.

암호학의 아버지 데이비드 차움(David Chaum) [출처=데이비드 차움 홈페이지]
암호학의 아버지 데이비드 차움(David Chaum) [출처=데이비드 차움 홈페이지]

 

암호학을 꾸준히 연구하던 차움은 지난 1990년 회사 '디지캐시(digicash)'를 설립하고 최초의 가상통화라 부를 수 있는 '이캐시(Ecash)'를 발행했다. 이캐시는 익명의 전자서명을 탑재한 소액 결제 시스템이었지만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는 못했다. 당시에는 익명성을 보장받지 못하더라도 간편하고 부가 혜택까지 누릴 수 있는 신용카드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1994년 첫 결제 이후 3년간 5000명의 이용자를 확보하는데 그친 이캐시는 결국 1998년 파산 신청을 했다.

비록 시대를 앞서간 탓에 이캐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데이비트 차움의 사상과 이캐시는 블록체인과 가상통화 그리고 탈중앙화의 근간이 됐다.

1990년대 암호화 기술을 통해 중앙 집권화된 권력 기관에 저항한 정치사회 운동 '사이버 펑크' 역시 차움의 영향을 받았다. 그가 1985년 발표한 '신분 없는 보안: 빅브라더를 이기는 방법'이라는 논문이 사이버 펑크 사상의 배경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보편화되고 블록체인과 탈 중앙화 그리고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핫이슈로 떠오른 2019년 오늘날, 데이비드 차움은 진가를 인정받고 '암호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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