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협회]⑤ '설익은' IEO 가이드라인 던진 블록체인스타트업협회
[위기의 협회]⑤ '설익은' IEO 가이드라인 던진 블록체인스타트업협회
스타트업 배려가 부족한 스타트업협회?
  • 우선미 기자
  • 승인 2018.11.0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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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스타트업협회가 한국블록체인산업진흥협회, 고려대학교와 함께 지난 1일 고려대 미래융합관에서 ‘IEO 가이드라인 발표’ 행사를 열었다. (왼쪽부터) 임명수 스타트업협회 부회장, 신근영 회장, 신윤관 산업진흥협회 사무처장.
블록체인스타트업협회가 한국블록체인산업진흥협회, 고려대학교와 함께 지난 1일 고려대 미래융합관에서 ‘IEO 가이드라인 발표’ 행사를 열었다. (왼쪽부터) 임명수 스타트업협회 부회장, 신근영 회장, 신윤관 산업진흥협회 사무처장.

가상통화 공개(ICO/initial coin offering)가 규제의 벽에 부딪히자 거래소 공개(IEO/Initial Exchange Offering)가 대안으로 부상했다. 이런 시류를 타고 블록체인스타트업협회(KBSA/이하 스타트업협회)가 IEO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이 가이드라인에 대해 ‘너무 성급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전통 금융시장의 규칙을 그대로 베껴 가상통화 시장과 괴리됐고, 거래소의 공정성 확보 방안은 아예 담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 IEO 가이드라인 'MVP 구현한 경우에만 15억까지 모집'

지난 1일 스타트업협회는 고려대학교 암호화폐 연구센터, 한국블록체인산업진흥협회(KBIPA)와 함께 고려대 미래융합관에서 'IEO 가이드라인 발표' 행사를 열었다.

신근영 스타트업협회 회장은 IEO 가이드라인의 목적에 대해 "현재 ICO 시장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자는데 있다"고 말했다. 기술력이 없는 각종 사기성 프로젝트가 범람하는 이 때, 가이드라인이 중심을 잡아줄 것이란 설명이다.

이 가이드라인은 IEO의 정의를 '거래소 상장 직전에 일정한 자격조건을 갖추고 거래소를 통해 토큰을 판매하는 것'으로 내렸다. 최소기능을 갖춘 제품(MVP/Minimum Visible Offering)을 구현한 경우에만 '15억원' 규모 이상의 토큰 판매를 할 수 있게 제한했다. 거래소가 상장 보증인 역할을 한다.

◆ 증권시장의 룰, 무작정 베끼기…'몸에 맞지 않는 옷'

하지만 이 가이드라인을 받아본 시장의 반응은 차갑다. 전통 금융시장의 '규제 옷'을 억지로 가상통화 시장에 입혀 놓은 꼴이라는 지적이다.

가이드라인은 증권시장의 기업공개(IPO/Initial Public Offering) 규정을 대부분 베꼈다. 스타트업협회는 "이번 가이드라인이 기존 증권시장의 IPO 기준을 준용했다"고 발표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IEO와 IPO는 공통적으로 초기에 자기자금을 이용하고, 부족한 추가자금을 엔젤 투자자 및 벤처 캐피탈(VC)로부터 조달한다. 공개 후 상장을 하는 점도 같다.

IPO가 한국거래소 내 상장심사위원회가 상장자격을 심사하고 IEO는 가상통화 거래소가 심사를 한다. 다만, 추가 자금 조달 방법이 각각 유상증자, 보유 코인 매각이라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가상통화 전문가들은 "'안정성·공신력'을 가지고 퇴출 권능까지 겸비한 한국거래소와 안정성과 공신력이 보장되지 않는 가상통화 거래소를 동급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 가상통화 거래소는 지방자치단체 신고를 거쳐 통신판매업자로 등록·활동하고 있다. 증권거래소가 금융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영업을 할 수 있는 것과는 차이가 난다.

이에 대해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전자상거래법상 영업 형태 등이 달라 통신판매업자로 볼 수 없다'며 자격 말소를 지자체(구청)에 권고한 바 있다.

상장 전 토큰 모집 상한선을 15억원을 잡은 것도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상한선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2일 '창업시기와 관계없이 내년 1월부터 모든 중소기업으로 범위를 확대하고 연간 조달액을 15억원으로 늘린다'고 발표했다.

신근영 스타트업협회 회장은 발표회에서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내년 1월 크라우드 펀딩 규모를 15억원으로 제한한 것을 준용해 IEO 토큰 모집액도 15억까지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 스타트업 "돈이 없는데 어떻게 MVP부터 개발?" 실효성 지적

스타트업계에서는 가이드라인의 실효성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업 초기, 종잣돈이 부족한 스타트업이 자금을 모집하는데 '준(準) 상장' 수준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것이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댑(DApp)일 경우, 자기 자금을 털어 MVP를 개발해야 하고, 이것을 투자자 앞에서 구현해 보인 후 1000만점 중 700점을 맞아야 IEO를 진행할 수 있다.

사업 모델이 메인넷인 경우 콘셉트 증명(Proof of Concept) 이상을 구현하고 소스코드를 공개해야 한다. IEO 가능 점수 1000점 만점에 절반인 500점은 '기술 점수'에 배정했다.

발표회에서 한 참여자는 "스타트업이 자금을 모집하려면 'ICO와 상장의 중간 수준이 돼야 하는데 이 가이드라인은 준(準) 상장 수준"이라며 "돈이 없는 스타트업이 초기 자금을 어떻게 모집하겠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한국 IEO 사례 중 MVP 수준의 댑이 출시된 적이 있는가'라는 다른 참여자의 질문에 대해 신 회장은 "없다. 사례가 있으면 고민 안 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프로젝트팀은 거래소를 자금 모집의 '마지막 통로'로 보고 있는 듯하다. 중국, 한국 등 ICO 자체를 금지하고 있는 국가에서 거래소를 통해 우회적으로 자금 조달을 시도하는 모습이다.

금융감독원이 ICO 진행사에 칼날을 빼든 상황이기에 더욱 그렇다. 금감원은 지난 10일 ICO 실태조사에 나섰다. 금감원이 ICO를 진행했거나 진행 중인 회사에 발송한 질문서에는 ▲주주 현황 등 해당 기업 구조 ▲ICO 이후 코인의 향후 배분 등 세부적인 질문이 포함돼 있다.

이 외 ▲ICO로 조달한 통화(가상통화 및 원화, 달러 등 법정화폐 조달 여부 및 내역) ▲해외에서 ICO를 진행한 이유 ▲국내 투자자 대상 홍보는 누가 계획 및 진행했는지 등 질문에 대한 상세한 답변을 요구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사를 규제를 위한 밑작업으로 보고 있다.

◆ 거래소 검증은 누가? 무소불위의 권력 가져

가이드라인에서 또 하나 빠진 것은 거래소 검증 절차다. IEO는 '상장 확정 전' 자금 모집을 거래소의 주도로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래소가 삼사관 및 보증인 역할을 한다. 자금이 절실한 스타트업이 을(乙)이 되고, 거래소가 갑(甲)이 되는 순간이다.

거래소는 IEO 코인(토큰)을 평가함으로써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쥘 수 있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그동안 프로젝트는 ICO를 마치면 거래소의 심사를 거쳐 거래소에 상장하는 것이 수순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IEO 과정에서 거래소 영향력이 커지고 신규 회원이 늘어나 수수료 수익이 늘어난다"며 "거래소가 과열 경쟁에 나서는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는 만큼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거래소가 상장을 조건으로 프로젝트의 코인(토큰)을 싼 값에 조달하고 투자자에게는 비싼 값에 팔 가능성도 존재한다.

나아가 공인인증을 받지 못한 거래소가 '토큰 장사'에 본격적으로 나서거나 사기 주범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거래소와 프로젝트 진행사가 삼삼오오 모이는 협회가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IEO가 초기 단계인 만큼 투자자 모두가 동일한 가격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불완전 요소를 제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ICO에 당국의 규제가 쏠리는 상황에서 규제가 없는 IEO로 방향을 트는 프로젝트팀이 많다"면서 "IEO에 대한 별다른 규제가 없어 거래소와 프로젝트가 유착되는 조짐도 보인다"고 우려했다.

◆ 제정 준비부터 허술…제정위원은 협회 관계자가 대다수

가이드라인은 준비과정부터 부실했다. 스타트업협회는 발표일을 11월 1일로 잡았지만, 발표 직전까지 내용은 확정되지 않았다.

협회 홈페이지에는 "(가이드라인 내용 논의를 위해) 29일 아침 7시 30분부터 회의실에서 심도 있게 토론했다"며 "31일 밤에 해커톤으로 결론을 내기로 했다"고 공지했다.

가이드라인 발표시간도 1일 2시로 예정돼 있었지만 발표 이틀 전 4시로 변경됐고, 발표 당일 행사 장소가 바뀌고 변경공지를 하지 않아 혼선을 일으켰다. 

거래소 및 금융당국, 스타트업의 의견을 충분하게 반영하지 않은 점도 문제다. 11명의 가이드라인 제정위원 리스트를 보면 대부분이 협회 내부 인사다.

제정위원 리스트를 보면 스타트업협회의 신근영 회장, 임명수 부회장, 블록체인산업진흥협회의 김형주 회장, 신윤관 사무처장, 권수호 교육센터장이 참여했다.

이외 학계에서는 김형중 고려대학교 교수, 법조계에서는 구태언 법무법인 테크앤로 대표변호사, 한서희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스타트업계에서는 한인수 아이올로스파트너스 대표, 김태봉 쉴드큐어 대표가 이름을 올렸다.

이번 IEO 가이드라인에서 가상통화 거래소가 주연급이지만 거래소 담당자는 리스트에 없다. 거래소, 금융당국 관계자는 포함되지 않았고, 스타트업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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